여행문화18 춘곤증을 떨치는 봄나물의 달짝지근한 향기 꽃다지 쟁기를 깊숙이 넣어 갈아엎은, 물기 촉촉한 흙을 만나면 가까이 다가가서 흙냄새를 맡고 싶어진다 농기계를 들여밀 여지도 없는 산자락의 다락논이면 딱 좋고 논두렁이 두툼해서 들풀이 많아 새순을 내고 꽃을 피워 연두와 노랑색이 흘러넘치면 더욱 좋다 꽃다지 달래 냉이 꽃다지 쑥 씀바귀 벼룩이자리...는 논둑 밭둑 저지대 양지바른 곳에 봄이오면 제일먼저 지상으로 나와 쌀쌀한 봄바람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달래 씀바귀는 다년초지만 냉이 꽃다지 벼룩이자리는 늦가을부터 싹을 내어 한번의 추운겨울을 겪어야하는 이년초로땅속에 많은 종자를 저장해 냉해를 감수하고 쉼없이 싹을 틔우는 억척스러운 들풀이다 손실을 감수하고 사활을 건 생명력으로 지상에 안착하면 짧은기간 폭풍성장을 하면서 꽃부터 피우는 저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보.. 2024. 3. 2. 산촌山村의 겨울 얼음장밑에서 피는 꽃 양평군 용천면 옥천리 털썩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덩이 떨어지는소리. 툭 곁가지 부러지는 소리. 화르르 소나무에 쌓인 눈 쏟아지는 소리.뒷산의 어지간한 대소사大小事는 집안에서도 방바닥과 벽을 타고 울려 굳이 문을 열어볼 것도 없다 한해 겨울을 넘기려면 더러 겪는 일이지만 겨울에 더 푸른 소나무의 다복한 잎과 촘촘한 곁가지에 폭설이 쌓이면 대책이 서지 않는다. 뿌리가 깊지 않고 옆으로 뻗는 습성때문에 선 채로 졸도 하듯 넘어지니 난감하고 애석하다 그러나 소나무에 닥친 변고는 이웃하는 잡목과 초본류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진 횡재수다 치열한 경쟁속에서 간절하게 차지하고 싶었던 흙과 물과 햇빛을 한꺼번에 해결할 기회가 왔으니 상하좌우로 한限껏 가지를 뻗어 공간을 차지할 욕망으로 숲은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오랜시간 숙.. 2024. 3. 1. 갯벌에 피는 들국화 갯개미취 퉁퉁마디 (강화도 ) 갯벌 가득한 염생식물에 서산을 넘어가는 해가 마지막 열기로 불을 지피고 진홍빛으로 달아오른 전초全草 갈피마다 서리서리 피어오르는 불꽃같은 잔상殘像 때문에 한동안 숨쉬기를 멈출 만큼 황홀했다 칠면초 퉁퉁마디 해홍나물같은 갯식물은 어린시절 초록색으로 자라 늦여름이면 붉은색으로 성장하면서 어느날 문득 화려한 자태를 들어낸다 퉁퉁마디(전북 군산시 비응도) 가을이 오는 날 실체를 들어내는 갯식물의 색깔은 진홍색이나 암적색에 가깝지만 암적색의 농도를 낮추고 짙푸른색을 살짝 섞은 듯한 중간색으로 대형극장의 커튼색처럼 무거운 느낌의 꼭두서니빛이다 꼭두서니빛은 일본인들이 쓰는 천색穿色을 직역한 것으로 꼭두서니(식물) 뿌리로 염색한 색色과는 달라 이 미묘한 차이를 나타낼 우리말 색이름 찾기에 열중하면.. 2024. 3. 1. 비 안개 흐림 여름 설악의꽃 ○우중雨中이여도 비구름이 얇아서 하늘이 훤하면 사진찍기는 무리가 없다비에 젖은 숲은 본디 색보다 밝고 선명해서 촉촉한 나무줄기는 생기가 있어 보이고 빗방울이 잎맥을 따라 송글송글 맺히거나 꽃잎에 묻어 일렁이면 우중출사를 감행한 만큼의 감동과 생생한 현장사진을 얻을 수 있다 녹두알처럼 작은 홍괴불나무의 꽃이 넓은 잎뒤에 숨어 피고 꽃만큼이나 작은 벌이 꿀을 먹는 장면은 은밀하고 신비하다. 행여 빗방울이 꽃잎을 떨구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인가목은 꽃도 향기도 줄기에 난 가시까지 장미를 닮았다 먹구름이 몰려와 숲을 덮치며 사위四圍를 삼키고 얼굴을 적시는 빗물 때문에 쩔쩔매면서 카메라를 떨지않으려 숨을 참고 비구름속에 잠긴 고산숲과 하얗게 핀 눈개승마를 찍었다. 물이 차오르듯 몰려오는 안개속을 잠영潛泳 하듯 .. 2023. 6. 20. 유성流星처럼흐르는 왕버들씨앗 왕버들 버드나무 ○엄동嚴冬은 지났고 절기節氣로는 분명 봄인데 옷속으로 파고드는 오스스한 냉기에 움츠러들어 문밖을 나서기가 망설여지는 봄은 지루하다 다행인것은 봄비가 내릴때마다 성큼 기온이 올라 어느날 들길을 걸으면 마른가지에 연둣빛이 신기루처럼 아롱거린다 얼핏보이는 빛깔을 찾아 발 줌zoom으로 이동 하노라면 사선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여린 꽃눈이 정말 연두색이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버드나무류는 잎보다 먼저 동아冬芽가 껍질눈을 터트리며 꽃눈을 깨우고 봉오리를 부풀린다 회갈색 나목裸木에 찾아온 진정한 봄기운에 스산한 겨울풍경은 이미 달아난듯하다 땅을 헤집고 뾰족하게 올라오는 어린쑥이나 달래 냉이 꽃다지 같은 향기로운 봄나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들판은 완연한 봄이다 4월초순 왕버들의 수꽃은 위를 향하여 꼬리.. 2023. 3. 24. 눈물처럼 후두둑지는 동백冬柏꽃 아직은 선명한 진홍빛 꽃잎속에 노란꽃술, 수꽃술에 맺힌 꽃가루의 도드라진 질감도 선명한데 미련없이 꽃송이를 통째로 떨구는 동백나무가 야속하다 한송이씩은 뚝 뚝, 두세송이는 후두둑 눈물처럼 떨어졌겠지.누구나 알 것 같은 유명가수의 노랫말 가사에서 빌려왔다 긴세월 함깨 살아온 토착종이여서 동백꽃을 소재로한 문학이나 예술작품은 많다 그까짓 사랑 때문에 올지는 말자고 다짐하는 김용택시인의 선운사 동백꽃이나여인과 동백과 육자배기를 섞어 아름다운 시어를 남긴 미당서정주님의 시를 사랑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님의 꽃은 고향 통영에 흔했던 산다화(동백꽃의異名)였으면 좋겠다 그렇긴해도“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 2022. 12. 31. 각시투구꽃 치명적인 맹독(猛毒) ○수면水面위에 어리비치는 자작나무의 하얀수피가 은가락지처럼 아름답다는 은환호(소천지)는 북파산문에서 장백폭포로 가는 중에 있다 순백의 나뭇등걸 만으로도 귀티가 나는 자작나무가 연두색 새순을 내거나 연한 노란색으로 단풍이들면 신비로운 산중호수와 어우러져 꼭 들려야하는 비경秘境 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 자작나무 숲 아래에서 진한 남색으로 피는 각시투구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각시투구꽃은 꽃색으로는 흔치않은 진한 남색이며 빛이 없는 숲속에서도 들어내는 날렵한 자태는 새침하고 싸늘한 듯 시크하다 맑은 날 보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이 더 많은 백두산의 날씨라지만 공교롭게도 가는 날마다 먹구름속이거나 비가 내렸다 비바람속에서 전초를 꼿꼿이 세우고 빗방울의 무개를 이기려 애쓰며 허공에 그리는 느린 흔적은 파.. 2022. 10. 22. 백리향百里香 발끝에 묻어 백리를 가는 향 성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올라오는 이향異香은 어디에서 오나, 코를 크게 늘리고 숨을 들이쉬는 안면顔面과 짚신감발이 그려진다 화장암을 덮은 키작은 관목, 백리향의 분홍빛 꽃송이가 발아래 깔렸다 잎 줄기 꽃 전초에 향기가 있어 어느 한곳이 닿아도 자지러지게 향기를 분출해 찡한 향기가 온 사방에 흩어진다 건조한 사질양토를 좋아하는 백리향은 가야산 상왕봉 아래 습지를 받치고 있는 암반주변과 칠불봉 정상 가장자리에 산다 가야산의 주봉인 상왕봉은 해발1430m, 바로 옆의 칠불봉도 해발 1433m. 백리향이 발견되던 그옛날에는 산을 취미로 오르던 시대는 아니었으니 산채나 약초케는 심마니나 사냥꾼 같은 힘 좋은 남자였을 것 같다 현대의 등산화는 비브람창이나 고무창이라 바닥이 단단해 물기를 흡수하거나 머금지 않아 발바.. 2022. 7. 7. 얼레지꽃 도발적인 요염함 우리나라의 겨울은 춥다 깊은 산속의 추위는 더욱 혹독해 모든 생명은 생장을 멈추고 오로지 인고의 시간속으로 침잠한다 평균기온은 높아도 영하의 저점을 갱신하는 맹추위와 변덕스러운 날씨에 지구는 진정 뜨거워지는 걸까 식어가는 걸까 혼란스럽다 마침내 햇살이 따스해 쌓인 눈을 녹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지표면의 낙엽이 썩기 시작해 봄이 시작되는 숲은 가장 어둡고 칙칙하다 기적처럼 진달래의 분홍빛이 숲에 생기를 불어 넣으면 숲바닥에서는 키작은 식물들이 바쁘게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고 봄비가 자주 내려 숲속의 생명들을 깨운다 썩은 나뭇등걸이나 낙엽같은 동식물의 사체가 쓸려내려간 흔적으로 어수선한 지표면에서 불쑥 올라오는 새순속에 얼레지는 선두주자다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이 꽃봉오리부터 올려보내 햇빛을 선점하면 얼레지는.. 2022. 3. 24.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