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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운영블로그
여행문화

얼레지꽃 도발적인 요염함

by 자운영영 2022. 3. 24.

우리나라의 겨울은 춥다

깊은 산속의 추위는 더욱 혹독해

모든 생명은 생장을 멈추고

오로지 인고의 시간속으로 침잠한다

 

평균기온은 높아도 영하의 저점을 갱신하는 맹추위와

변덕스러운 날씨에

지구는 진정 뜨거워지는 걸까 식어가는 걸까 혼란스럽다

 

마침내 햇살이 따스해 쌓인 눈을 녹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지표면의 낙엽이 썩기 시작해

봄이 시작되는 숲은 가장 어둡고 칙칙하다

 

기적처럼 진달래의 분홍빛이 숲에 생기를 불어 넣으면

숲바닥에서는 키작은 식물들이 바쁘게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고

봄비가 자주 내려 숲속의 생명들을 깨운다

 

썩은 나뭇등걸이나 낙엽같은

동식물의 사체가 쓸려내려간 흔적으로

어수선한 지표면에서

불쑥 올라오는 새순속에 얼레지는 선두주자다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이

꽃봉오리부터 올려보내 햇빛을 선점하면

얼레지는 두잎사이에 꽃봉오리를 안고

조심스럽게 올라온다

 

해가지면 떨어지는 기온과 낮이면 뜨거운 햇살이 연약한 꽃봉오리를 다칠까

초록잎은 종종 붉은색을 띠기도 한다

겉보기로는 땅위에 두잎이라 바로 뿌리가 있겠지 짐작한다면 낭패다

땅위에는 잎몸만 드러내고 가늘고 긴 잎줄기가 땅속 깊은 곳 뿌리줄기에서

올라와 좀처럼 속내를 들어내지 않는다

뿌리줄기 끝 비늘줄기에 영양분을 저장하고

점차 땅속으로 깊이 들어가 천적이 뿌리를 훼손하는 일을 막는다

 

큼직하고 시원하게 펼친 잎은 수분이 많아 두텁고

자주색 얼룩 무늬가 있어 얼레지다

처음 발아할 때 한 장의 잎 만 나오고 5~6년이 지나야 두장의 잎이 나오며

그제서야 잎사이에서 하나의 꽃대를 올리는 진중함이 있다

길죽한 꽃봉오리는 햇빛을 받으면 꽃잎을 펼치기 시작하고 완전히 피면

끝이 뒤로 바짝 말리며 화피안쪽에 선명한 자주색 무늬를 들어내 곤충을 부른다

해가 지면 꽃잎을 닫고 흐리거나 비가 오면 꽃잎을 열지 않는다

 

흰꽃 노란꽃이 많은 봄꽃속에서 진홍으로 피는 색깔도 과감하지만

고개를 들고 한껏 뒤로 제낀 꽃잎에 선명한 무늬와 길게 뽑은 꽃술의 요염한

모습은 사랑스러우나 도발적이고 방자하다

얼레지꽃을 만나면 그냥 지나칠수 없고 환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숲바닥을 가득 채운 화사한 얼레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계곡을 타고 산등성을 넘어 흘러넘치는 봄기운을 퍼트린다

 

중부이북에는 진홍이나 붉은보라빛으로 색이 진하고

남부지방 서해안에서는 푸른색이 많은 연한 보랏빛으로 핀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고산에서

키큰 나무가 새잎을 내기전 꽃이 피고 여름에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삭과로 3개의 능선이 있고 씨앗이 익으면 아래로 쏟아져

촘촘하게 군락을 이루며 산야를 뒤덮는다

뿌리가 땅속 깊이있어 케서 옮기거나 뿌리나누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씨앗으로 발아해서 꽃이 피기 까지는 기간이 길어

원예용으로 재배하기에는 까다로운 식물이다

 

농경시대에는 이동수단이 없어 가까운 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산야초라면 무엇이나 허투루 버리는 것 없이 식용이나 약용으로 활용했다

얼레지는 약간의 독성이 있어도 삶아서 무치거나 국을 끓였고 묵나물을 만들어

산채가 없는 계절에 요긴한 식량이 되었다

관광지에서 맛을 본 얼레지나물은 약간의 신맛이 나고 향이 없고 질긴 편이라

우리가 즐겨먹는 산채중에 맛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농업도 진화해서 현대인들의 선호도에 맞는 품목을 선택적으로 재배하니

단점을 보완해 자연에서 채취하는 것 보다 더 연하고 향이 좋고 신선한 제철나물을

싼 값에 제공한다

곰취 취 어수리 산마늘 ...고들빼기 씀바귀 냉이 쑥... 갯기름나물은 방풍으로 이름을 달고

새로운 맛으로 호감을 얻었다

 

추억속에 있던 거의 모든 나물이 개량되고 진화해 식탁에 오른다

얼레지처럼 선호도에서 밀리고 재배도 어려운 식물은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요염한 자태를 뽐내도록 버려둘 일이다

 

※2022년 봄호 여행문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