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잎향유
급경사로 넓고 길게 휘어진 날등성,
갈라진 틈새에 훍먼지가 쌓였다
흙먼지는 물을 머금어 연두빛 이끼를 품고
이끼에 기대어
가는잎향유는 붉은보랏빛 고운 꽃을 피운다
자연이 늘 그러하듯 낙엽이 쌓이는 높이가 변해도
작은 돌이 굴러도
폭우에는 물길을 바꿔 산사태를 만드니
긴세월 만들어진 꽃밭을
쓸어내리며 흔적도 없이 지우기 일수다
가는잎향유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척박한곳을 택했으나
후손까지 한곳에 잡아둘수는 없다
한해살이로 씨앗을 만들어 멀리보내
좋은 곳에 안착하기를 바란다
작은 견과모양의 씨앗이 물을 만나면
끈적해져서 몸을 지탱하고
바위사이에서도 싹을 틔워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부활하는 모습은
한해살이풀이지만 다년초처럼 보인다
가는잎향유
그러나 날등에서 살아내기는 고달프다
쉽게 고갈되는 수분으로
잎은 선형으로 침처럼 가늘고 길어졌다
잎에서 절약한 에너지로 원줄기와 가지끝에
꽃방망이처럼 뭉친 꽃이삭을 만들고
풍부한 꿀로 가을 곤충을 불러
똘똘한 씨앗을 얻는 일에 열중한다
꽃향유
향유 꽃향유 가는잎향유는 꿀풀과의 향유속으로
아름다운 향기가 나고 약성이 있어 전초를 약재로 이용한다
꽃이 한쪽으로 치우쳐 달리는 향유는 들판에 살고
꽃차레의 길이와 폭이 모두 크고
꽃색갈이 진한 꽃향유는 산비탈에 분포한다
향유속은 여름형 일년생 초본으로
늦봄에 새싹을 내고
타는 듯한 폭염이 잦아드는
늦장마후에 속도를 내며 쑥쑥자란다
꽃향유
향유와 꽃향유가 9월 중순에 핀다면
가는잎향유는 10월 중순에 핀다
이맘때 설악이나 지리에는
열매도 지고 단풍이 들며 첫눈이 내리는데
월악산과 속리산군에는
아직은 따사로운 햇빛이 바위등판을 달구고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도 온기가 있어
체온을 유지한다
비옥한 땅이 아니어도 생명을 키워내는
자연의 절묘한 조화는 기적이다
가는잎향유
날등은 전국의 산 어디나 있지만
가는잎향유는
충주시 월악산군과
경북 문경시 속리산권에 군락을 이루며 산다
가는잎향유
지리에서 백두에 이르는 산맥을 따라
대간종주를 하면
지리산은 능선을 따라 한달음에 끝내고
덕유산을 지나 빠르게 진도進度를 빼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기전 중부에 몰려있는 산군을 만난다
산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실루엣이 멋지면 가고싶어지는 것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는
희양산 구왕봉 막장봉 장성봉을 오르면서
꽃은 향유와 같지만 잎이 가늘어
침처럼 보이는 이식물을 처음 만나고
설레임으로 벅찬 가슴이 떨리는 경험을 했다
고산식물이나 희귀식물을 만나도
이름도 몰라요 성도모르니 답답했다
두꺼운 식물도감을 사서 첫장부터 한 장씩넘겨
그림 맞추기로 정명을 알아내고
책장을 넘기다 본 식물을 자연에서 만나는 요행으로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가는잎향유
괴산 연풍면 신선봉 할미봉 연어봉은 가는잎향유의
가장 큰 자생지로 알려져있고
가파른 산을 오르지 않아도
조령산 자연휴양림주변 수옥정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식물이다
노련한 산꾼은 이화령에서 출발하는
조령산 신선봉산행시
느닷없는 소나기를 만날 확률이 높아
그날의 일기와 상관없이 우비를 준비한다
첩첩이 쌓인 산군에 비구름이 갇혀서
자주 비를 뿌리니 성가시다 했는데
산지와 들판에 널려있는 많은 희귀식물을 키운다
가는잎향유
가을새벽에는 운해가 생기는 날이 많아
풍경과 함깨 찍는 꽃사진을 꿈꾸지만
빛이 적절한 시간이면 운해는 소멸해서
생기있는 꽃과 운해가 걸린 산군을
같이 담는 일은 어렵기만하다
선택은 언제나 사광斜光이 꽃에 스며드는 시각,
때로는 반짝이며 흘러가는 구름이 좋아
시도를 하지만
꽃과 풍경을 모두 살리는 사진은
아직도 풀지 못하는 숙제다
나른한 피로가 오히려 뿌듯한 귀가길, 마주하는 일몰이 새삼스러운데
노을지는 서쪽하늘로 시선을 따라가면
“아 이맘때구나 ..그때도 그랬어 ”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어둠이 사위에 내려 앉고
싸늘하게 식은 바람이 불어 오싹한 한기가 기분좋은 시각.
겨울로 가는 가을하늘은 불타는 노을속에 해를 떨구고
전복껍질처럼 물드는 새털구름에 정신줄을 놓는 것도
이맘때 10월 중순의 가을하늘이다
※날등이 보내는 가을염곡(艶曲) 가는잎향유
2021 여행문화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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