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잎꿩의비름(돌나물과)
꽃이 없다면 한발짝도
내딛기 싫은 협곡으로 들어선다
계곡의 양쪽 경사면은 곧 흘러내릴 것 처럼
푸석한 바위벽이고 바닥은 달뿌리풀이 엉겨서
발걸음을 옮기기도 어려운 험지險地다
물이끼 가득한 고인물에 물풀과 잡초가 무성한데
간혹 웅덩이가 있어
장화를 신고도 미끄러지고 빠지기 일수日數라
베낭속의 카메라가 걱정이다
둥근잎꿩의비름(돌나물과)
스틱으로 헤집다가 뱀이라도 만나면
놀라서 정신줄을 놓을 것 같고
사방에 거미줄이라
스산한 기운으로 몸이 움츠러든다
둥근잎꿩의비름은
주왕산계곡과 내연산의 일부 계곡에만 산다
흙이 되어가는 양분 많은 바위산에 물길이 나
아직도 풍화작용중인
절벽의 전석지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둥근잎꿩의비름(돌나물과)
돌나물과의 두껍고 큼직한 회청색잎은
마주나면서 십자모양이다
둥글게 모여 달리는 진홍빛 꽃송이에
꽃밥은 적색, 꽃가루는 홍색,
같은 붉은색의 어울림은 단순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강렬하다
을씨년스런 협곡에 숨어피는 붉은꽃
만나고 돌아서면
비밀스러운 꽃의 존재를 발설하기 싫어
혼자만 보겠다고
욕심부려보고 싶은 아름다운 야생화다
둥근잎꿩의비름(돌나물과)
자생지는 지극히 한정적이나
둥근잎꿩의비름은 어디서나 잘 산다
씨앗이나 삽목으로 번식이 쉬워
주왕산의 등산로에 복원을 위한
식재도 성공률이 높고
초물분재로도 좋은 소재가 된다
둥근잎꿩의비름(돌나물과)
잡목도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깊은 가을,
이 특별한 야생화를 자생지에서 만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깊은 산속의 계곡으로 탐사를 떠난다
강산은 때때로 변화를 되풀이 하는 듯.
십여년전에는 달뿌리풀도 없고
맑은 물이흐르는 트인 계곡이였으나,
해가 갈수록 잡풀이 무성해 오랫동안 험지였는데,
2019년 큰물이 쓸고 지나가
다시 걸어가기 좋은 계곡으로 변했다
둥근잎꿩의비름도 큰물에 쓸려
줄어들다 다시 회복되기를 반복한다
둥근잎꿩의비름(돌나물과)
협곡은 해가 산위로 떠 올라야 햇빛이 들고
산아래로 내려가면 해가 진다
해가 들어오는 시간은 짧고
하늘을 가리는 방해물이 많아 계곡을 오르내리며
빛이 드는 곳을 찾아 부지런히 옮겨다닌다
자연광을 받아 붉은빛이 살아나고
꽃송이는 불꽃처럼 타오를 때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다
둥근잎꿩의비름(돌나물과)
예측이 어려운 자연환경의 변화속에서
꽃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것인가
마음 졸이며 다음해를 기다린다
꽃과 사진을 좋아하는 동호인의 증가로
야생화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감상하고 사진 찍는다는
묵시적인 약속이 어느새 무너졌다.
감히 자생지를 넘보지 못해 까치발하고
고개 젖히고 주변을 맴돌았는데
어느날 누군가가 바위위로 길을 내고 올라가서
시원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찍으니
모두들 그길을 따라 오른다.
곡예하듯 바위에 메달려
원하는 사진을 얻었겠지만
자생지의 신비함은 깨졌다.
둥근잎꿩의비름(돌나물과)
바위에 습기를 잡아주던 초록색이끼와
산야초와 거미줄까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는 바라는
소박한 바람도
먼 곳에 있어도 단번에 알아채는
꽃이 뿜어내는 후광도 사라졌다
가슴 한쪽이 비어가는 듯 공허하다
둥근잎꿩의비름(돌나물과)
여름이면 찾아오는 폭우와 태풍으로
계곡물이 범람해 지형을 억변億變하더라도
어딘가에 살아있어
아무도 모르게 뿌리를 튼튼히 하고
풍성하게 번식하리라 믿고 싶다
예전에 그랬듯이 선홍빛 화려한 둥근잎꿩의비름이
경사면 여기저기에 아름답게 자리잡기를 소망所望한다
※2020 11.12월호 여행문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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