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실물 보다 김소월의 시가 먼저였던 것 같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 드리 우리다 “
아름따다 가실 길에 ...사뿐히 즈려 밟고 ...서정적인 시어 詩語에
가슴이 미어지는데,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맹세를 했다
사랑하고 싶은 열정의 시대를 사는 청춘에게
김소월의 명시는 불을 지폈다
있지도 않은 연인을 밤마다 떠나 보내고
무정하게 떠나는 님의 발걸음에
진달래꽃을 한아름씩이나 따서 뿌려
즈려 밟고 가라고 애원을 했다
아름답게 이별하고
아픈 상처는 인고로 받아 드리며
그리워하는 감정을 학습했다
하늘이 보일 듯 투명한 꽃잎,
보라인 듯 분홍인 듯
화사한 진달래꽃잎은
수줍게 스며들어 가슴으로 왔다
분홍색에 철매제로 검은빛을 더한 듯한
연분홍빛 보라색은
진달래 만의 독특한 색이라
진달래색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루한 겨울을 보내는 갈색의 숲에
어느날 문득 물감이 스친듯
화사한 진달래색이 나타나면
이미 벌써 봄이 와 있다는 메시지다
진달래는 야산 오솔길이나 도로를 따라 난 절개지,
버려진 산지 같은 척박한 곳에
제일 먼저 자리를 잡는 나무 중 하나다
목장이나 화전밭 자리에 진달래를 남기고 잡목을 제거해
꽃동산을 만든 산지는 전국에 많다
꽃소식은 남부지방에서 출발, 빠르게 북쪽으로 이동하고
낮은 산에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며 꽃을 피운다
국토의 뼈대가 되는 산맥을 따라 높은 산 깊은 골에도 진달래는 핀다
여수 영취산, 마산 무학산, 천추산 거제도의 대금산
대구 비슬산, 강화도의 고려산과 혈구산은 소문난 진달래 명소다
창녕 화왕산은 석축산성인 화왕산성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면
산성과 어우러진 멋진 진달래를 볼 수 있고
산행 난이도가 높은 해남의 주작산, 강진 덕룡산은
바다에서 솟는 햇빛을 받아 더욱 붉어진 진달래를 만날수있다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암릉을 오르내리며 바위를 정복하는 짜릿함과 함깨
침봉 사이사이로 핀 진달래를 즐길수 있어 등산인이라면 놓칠수 없는
필수 코스라 하겠다
산행은 계획한 거리를 정한 시간에 안전하게 걷는 것이 먼저라
함부로 머물지 못해 걷는 중에 바라보고 미처 감동을 느낄 사이도 없이
진행을 하니 늘 허기가 졌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즐기는 산행을 하고 싶었다
오랜 등산으로 무릅이 나빠진 것을 느꼈을 때
산을 갈 수 없는 시기가 온다는 예감이 들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진달래 산행을 계획했다
산행거리를 짧게 잡고 하루 일정을 일박이일로 정했다
지리산 세석대피소에 예약을 하고
세석이 가장 가까운 산청군 거림을 들머리로 이른 아침에 출발
느리지만 꾸준히 걸어 해가 지기전 세석에 도착했다
숙소에 신고하고 곧 바로 세석평전으로 올라
촛대봉을 등지고 앉아
반야봉으로 지는 노을 속에서 하염없이 진달래를
바라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었다
온통 돌과 바위로 된 척박한 땅이라 키는 작고 전초가 부실하지만
꽃을 피우려 안간힘을 쓰니
거친 산바람이 꽃잎을 흔들어 외롭고 서러운 이야기를 한다
원초적인 고독은 두려움에서 왔겠지.
깊은 산속에 덩그러니 앉아 밀려오는 외로움에 쉽게 무너지고
어느새 꽃이 된 듯 붉은 물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명분도 없이 코끝이 시리고 가슴이 벅찼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어둠이 찾아와 등산로가 보이지 않고
반야봉 하늘에 노을빛이 사그라들 때 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다음 날은 운해속에서 출발 삼신봉 경유 연하봉 길을 걸으며
수피가 하얀 좀고채목과 어우러진 키 큰 진달래를 만나고
직진하면 장터목을 지나 천왕봉이지만 뒤돌아섰다
애초에 진달래를 보려고 시작한 산행이였으니
차를 두고 온 거림으로 내려가는 원점회귀 산행을 했다
★ 2021년 3,4월호 여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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